광복절 특별사면 명단이 발표되자 정치권과 여론이 술렁였다. 자녀 입시비리로 국민의 신뢰를 배신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위안부 피해 할머니 후원금을 횡령해 구속됐던 윤미향 의원 등 국민 눈높이에 한참 못 미치는 전력이 있는 인물들이 사면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여론은 싸늘했고, 피해자 단체와 시민사회에서도 “광복절의 의미를 왜곡하는 사면”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단호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시민사회를 비롯한 각계 의견이 충분히 반영됐다”고 주장했다. 여당 더불어민주당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사면은 대통령이 헌법상 행사할 수 있는 고유 권한”이라는 것이다. 즉, 국민이 반대하든 말든, 정치적 이해득실이 어떻든, 헌법이 부여한 권한이니 대통령이 판단하면 그만이라는 태도다.
여기까지만 보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존중한다는 원칙론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원칙이 특정 상황, 특정 인물에게만 적용된다는 데 있다.
불과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이 허용하는 절차에 따라 계엄을 선포했을 때, 같은 민주당과 현 정부는 어떻게 반응했는가. 당시 그들은 “민주주의 파괴” “내란행위”라는 극언을 쏟아내며 국회 다수당 지위를 이용해 탄핵에 이어 구속 수사, 특검까지 진행하고 있다. 계엄 역시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임에도 상대 진영이 행사하면 ‘범죄’로 몰아붙였던 것이다.
같은 헌법 조문에서 똑같이 보장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데, 자신들이 집권해 행사하면 ‘존중받아야 할 권한’이고, 정치적 반대편이 행사하면 ‘탄압과 범죄’가 된다. 이 얼마나 노골적인 내로남불인가.
사면권과 계엄권 모두 헌법상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이다. 차이는 행사 주체와 시점뿐이다. 하지만 현 정권과 여당은 권한의 성격이 아니라,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이 ‘우리 편’인지 ‘저쪽 편’인지에 따라 기준을 바꾼다. ‘우리 편’ 대통령이면 고유 권한이라며 방패를 쳐주고, ‘저쪽 편’ 대통령이면 내란 프레임을 씌워 법적·정치적 공격을 가한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 공방이 아니라 법치주의와 헌정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행태다. 법과 헌법이 부여한 권한은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하며, 그 행사 여부를 평가하는 잣대는 일관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집권 세력은 헌법의 정신보다 권력 유지와 정치적 이익을 우선시한다.
더구나 이번 사면 대상은 ‘국민 통합’이라는 명분과도 거리가 멀다. 조국 전 대표 사건은 입시 비리, 권력형 비리라는 점에서 청년층과 학부모의 공분을 샀다. 윤미향 전 의원 사건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역사적 아픔을 정치적으로 소비하고, 후원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혐의로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렸다. 이런 인물들을 사면하는 것이 어떻게 ‘국민 통합’인지, 도대체 누구를 위한 통합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력은 헌법상 권한을 자신들의 방패로 사용할 수도, 상대를 공격하는 칼로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법과 권한을 정치적 무기로 삼는 순간, 그 권한은 본래의 정당성을 잃는다. 사면권이든 계엄권이든, 대통령의 고유 권한은 국민이 위임한 권한이다. 그 행사가 법률과 헌법에 따라 정당하다면 존중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정당한 절차로 견제해야 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의 권한 해석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사면권을 행사하며 “대통령 고유 권한”을 외치는 그 입으로, 계엄권을 행사한 대통령을 “내란범”이라 부른다면, 그것은 원칙이 아니라 정치 쇼일 뿐이다. 국민은 이제 이 쇼의 속내를 뻔히 꿰뚫어 보고 있다.
헌법은 권력을 위한 장난감이 아니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은 권력자의 편의와 이해관계에 따라 유연하게 변형되는 것이 아니라, 헌법 정신과 국민의 신뢰 속에서 일관되게 행사되어야 한다. 여당과 대통령실이 진정 ‘대통령 고유 권한’을 존중한다면, 그 존중은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만이 아니라, 불리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품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