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의자 대통령 이재명이 발표한 첫 내각 면면은 물타기 전략이 아닌가 한다. 자신부터가 심대한 혐의를 받고 재판까지 진행 중이어서 그 주변을 형성하는 국무총리나 각 부처 장관들, 대통령실 참모들 중 상당수를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흠결 많은 인물들로 채우는 것은 국민적 관심이나 비난을 분산시키려는 고도의 물타기 전략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된다. 이른바 국민비난 쪼개기 수법이다. 한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는 비난을 조금씩 나누어 갖겠다는 것이다. 상식적이고 유능한 인물을 각각의 자리에 보낸다면 대통령 이재명이 안고 있는 부담이나 무능력이 도드라져 보일 것이 뻔한데, 범죄적 잔머리의 대가 이재명이 그런 일을 하겠는가. 흠결이 많아 논란이 될수록 관심은 분산될 터이니 남몰래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결국 이재명 정부의 인물들은 능력을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이재명이 받아야 할 비난을 나누어 갖는 방탄용 호위무사를 대신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국민 인내심 테스트일 수도 있다. 이재명 정권이 어느 정도까지의 막장 인사를 해도 되는지 그 한계를 재보는 것처럼 보이니까. 웬만한 흠결 정도야 이재명에 비하면 구우일모(九牛一毛
중국공산당과 북한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미국에 대한 적개심, 즉 미국이 이스라엘 편이기에 반미(反美)심리로 나타난 결과라 보여진다. 그렇듯, 반미를 표방하는 대부분의 공산국가들은 이스라엘을 공통적으로 싫어한다. 그리하여 북한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하는 하마스 같은 테러단체에 무기는 물론 땅굴까지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남한 빨갱이들도 덩달아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북한과 공산주의자들에 대해 이스라엘이 호의를 가질 까닭이 없다. 더구나 핵기술 전수까지 하고 있으니, 북한은 이스라엘이 손봐줘야할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용천역 폭발사건이 이를 증명해준다. 반면 이스라엘은 대한민국을 진정한 우방으로 여기고 있다. 중동전쟁 당시 대한민국은 이스라엘에 탱크를 지원한 결과, 이스라엘은 이를 반드시 갚아야할 은혜로 여기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그리하여 일본해가 아니라 동해이고, 다께시마가 아니라 독도로 표기하는 세계 몇 안되는 국가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대한민국을 돕고 있다. 우리가 개발한 AESA 레이더 성능도 이스라엘이 그 성능을 시험하고 보장해주고 있다. 그외
요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며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김민석이라는 자가 공산국가인 중국의 칭화대학 석사 논문에서 탈북인을 ‘도북자(逃北者)’ ‘반도자(叛逃者)’로 비하을 한 것이 도마에 올랐다. 도북자는 북한에서 도망한 사람, 반도자는 정치·사상적 이유로 조국을 배반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래도 아직 대한민국에 우리 탈북인들을 위해주는 분들이 있다는데 큰 위안을 느끼면서 나의 생각을 몇 자 써본다. 우선 나는 ‘반도자’ ‘도북자’라는 말이 다 틀리지는 않는다고 본다. 누가 어느 편에 서서 탈북자들을 보는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즉 애국적인 국민들이 보면 “먼저 온 통일”로서 환영의 대상이 되는 것이고 김정은의 졸개들은 배신자라고 볼 것이다. 결국 탈북인들은 대한민국의 5000만 국민을 애국자와 반역자로 구분하는 시금석인 셈이다. 한마디로 탈북인을 헐뜯은 김민석 같은 자는 북한의 졸개이며 배신자라는 증거다. 그래서 지난날에 자기 조국 대한민국을 배반하고 북한으로 도망쳐가서 김일성의 손을 잡고 충성을 맹세했던 임수경이도 탈북인들을 노골적으로 변절자들이라고 짖어댔던 것이다. 임수경이나 김민석 같은 자들은 자기들이 대한민국을 배신하고 북한에 충성하는 것은 로맨스고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해당 영화가 앞으로 펼쳐나갈 방향을 보여준다. 한정된 시간에 압축적으로 전개해 나갈 맛보기 같은 기능이다. 오프닝 시퀀스가 조밀할수록 뒷부분의 전개가 흥미로울 것으로 기대를 하지만 왠지 성글어 엉성한 느낌을 주면 뒷부분도 역시나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작이 짜임새가 없는데 뒷부분에서 반전을 기대하는 것은 개가 고양이로 변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까지 25편의 시리즈를 만든 ‘007’ 영화들은 오프닝에서 한바탕 푸닥거리를 보여준 후에야 메인 타이틀이 나오고 본격적인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명맥을 이어온 것은 시작부터 관객의 흥미를 그는 구성이 탄탄했기 때문이다. 이재명정부가 시작한지 2주 정도 지났다. 영화로 치면 오프닝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시쳇말로 거시기 하다. 우선 인사 파열음이 양철 지붕에 쥐가 뛰어다니는 꼴이다. 국무총리 지명을 받은 김민석은 석연치 않은 기행이 차고 넘친다. 한때 문재인정부의 민정수석을 지낸 조국 씨가 갖가지 파렴치 범죄에 연루된 혐의는 정권 몰락의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김민석 의혹은 조국에 비견되거나 그 이상의 수준이다. 그의 추악한 면모는 개인 간 채무로 위장
2025년 올해는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이한지 80주년이 되는 해이면서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77주년이 되는 해이다. 1945년 해방이 되고 3년 후인 1948년 8월 15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가 들어선 사실상 대한민국의 건국이 선포되기까지 3년간은 격랑의 소용돌이 속에서 위험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3년의 시간은 자칫했으면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될 수도 있었던 매우 위태로운 상태에 있었다. 해방과 동시에 북쪽은 소련 공산당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소련군이 진군하면서 리단위까지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일사불란하게 공산당이 접수하는 반면 남쪽은 미군이 치안만 담당하는 군정체제 속에서 해방전 소련으로부터 유입된 공산·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지식인 집단이 주축이 되어 남쪽마저 공산화를 이루려는 남로당이 세력을 키워가며 끊임없이 대한민국의 건국을 저지하기 위해 수많은 만행을 저질러 옴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남로당 제주도당 군사부장인 김달삼이 중심이 되어 5.10 총선거를 저지하기 위해 폭동을 일으킨 제주 4.3사건을 꼽을 수 있으며, 제주4.3을 진압하기 위해 여수에 모인 14연대가 반란을 일으켜 대한민국의 탄생을 방해하려 한 사건도 대표적인 예라
인민재판의 시작인가. 21대 대통령 선거는 끝났지만 엉뚱한 곳에서 유탄이 터지고 있다. 이른바 ‘젓가락 발언’이 논란이 되더니 마침내는 의원직 제명 운동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청원 숫자도 며칠 만에 40만 명 수준을 넘어가고 있다. 특정 사안에 국민청원을 한 사례가 여러번 있기는 하지만 이만큼 많은 숫자가 빨리 모이기는 처음이 아닌가 한다. 기세로 보아 청원숫자도 더 늘어나겠지만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기다렸다는 듯 ‘국민여론’이라며 제명을 추진할 채비를 하고 있다. 좌파들이 흔히 하던 방식이다. 돌격대 같은 시민단체가 바람을 잡기 시작하면 동조 언론이 상황을 부풀린다. 이야기거리에 지나지 않을 사건이 큰 일이라도 터진 것처럼 가공되고 왜곡되어 당장 정리해야할 이슈로 둔갑한다. 그러면 국회에서 다시 받아쳐 더욱 문제를 키운다. 국회 차원에서 논란을 만들면 징계절차에 들어가거나 경찰이나 검찰, 공수처 같은 수사기관이 움직이게 만들고 다시 꼬투리를 잡아 문제를 더욱 부풀린다. 대선 후보 당시 이준석은 젓가락으로 여성의 특정 부위를 쑤신다는 행위는 여성 비하나 무시에 해당되지 않느냐며,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상대 후보에게 물었다. 그
대선에서 애국 보수가 졌다. 한국이 북한과 중국에게 진 것이다. 어쩌면 차라리 공산 치하에 사니만도 못할 정도로 아니꼽고 역겨울 정도로 역적들과 외국인들이 날치는 꼴을 볼 수도 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선거에서 지자마자 서로 제 잘났다며 선거에서 진 이유를 남 탓으로 돌리는 무식하고 멍청한 바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기는 매우 똑똑하고 잘했는데 남들 탓에 선거 졌다고 짖어댄다. 나는 못 배워서 무식한 놈이다. 그래서 어떤 신사들과 숙녀들을 무식하다고 쌍욕을 하니 이해하라.나는 단언한다. 이번에 선거 진 것은 보수우파 전체의 잘못이지 누구 개인의 탓이 절대 아니다. 이 김태산이도 말과 글로만 선거 이기자고 떠들었을 뿐 부정선거 잡아달라고 미국으로 달려 간 적도 없고, 화염병을 들고 국회로 선관위로 뛰어든 적도 없다. 보수 우파가 목숨을 걸지 못하고 몸을 사렸기에 진 것이다. 지금의 한국에서는 주둥이로만 떠들어 가지고는 100년이 가도 절대로 보수정권 못 찾는다. 그걸 모르면 최고의 머저리다. 전광훈이가 10여 년간 수십 수백만 명 모아놓고 목이 터지게 외쳤지만 해결된 것이 뭔가. 미안하지만 부방대 수천 명이 모여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달 보고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은 1905년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이 쓴 사설이다. ‘오늘, 목놓아 운다’는 뜻이다. 을사늑약을 통탄하면서 울분을 쏟아내는 글이다. 다소 길지만 일부를 인용해본다. ‘아아, 슬프도다. 저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大臣)이라는 자들은 자신의 영화와 이익을 바랄 뿐 위협에 겁먹어 뒷걸음치고 벌벌 떨면서 매국의 도적이기를 감수하였다. 아아, 사천 년의 강토와 오백 년의 사직을 타인에게 받들어 바치고 이천만 동포를 노예로 몰아넣었으니, 저 개돼지보다 못한 외무대신 박○○과 각 대신들이야 새삼스럽게 꾸짖을 것도 없거니와 명색이 참정대신인 자는 정부의 수석임에도 단지 부(否)자로써 책임을 면하여 명예 구함을 꾀하였던가. …아아, 원통한지고! 아아, 분한지고! 우리 이천만 동포여, 노예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 기자 이래 사천 년 국민 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멸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국권을 다른 나라에 갖다 바치고 2000만 백성을 노예 신세로 만든 것을 통탄하며 원통하고 원통할 뿐이라는 피끓는 외침은 절절하지만 나라가 그 지경이 된 것은 몇몇 대신(장관)들만의 잘못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