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사에서 대한민국 문호로 일컬어지는 소설가 박경리는 그의 소설 ‘토지’에 이런 말을 남긴다.
“설네설네 해도 배고픈 설움 겉을라구….”
세상에 아무리 서러운 일이 많다 해도 배고픈 설움만 하겠느냐는 뜻이다. 배고픔이란 두 눈 뜨고 죽어가는 고통이다. 뱃속에 곡기 들어가지 못하고 물로 배를 채우다가 서서히 죽어가는 고통.
그래서 부모 돌아가신 지극한 슬픔 속에서도 밥숟가락은 놓을 수 없고, 자식 잃어 애간장이 녹아난 다음날에도 식구들 밥 챙기려고 솥단지에 물을 붓는 것이다. 살아 있기에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삶을 시작하고 연장하는 최초의 행위가 먹는 것이다. 아기가 첫울음을 터뜨리며 찾는 것이 먹을 것이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굶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 고통을 안다. 쓰디쓴 위액이 넘어오고, 소화(消化) 시킬 것이 없는 뱃속을 방황하던 쓸개즙이 몸속에 흡수되면, 그 노란 쓸개즙이 피부로 나와 눈도 피부도 누렇게 되는 것을 부황(浮黃)이라 한다.
누렇게 부황이 든 얼굴을 잊을 수 없다. 6·25 전쟁이 끝난 1950~60년대 우리 사는 세상의 얼굴들이었다.
그 시절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먹을 것 뿐이었다. 그래서 풀 뿌리를 캐먹고 나무껍질을 벗겨먹다가, 어느 부잣집 굴뚝에 연기나는 것을 보고 낫과 몽둥이를 들고 달려가는 것이다. 굶어죽어가는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애비는 눈이 뒤집혀 강도가 되고 화적떼가 되는 이유가 그랬다. 배고픔이었다.
구한말 삼정(三政)이 문란한 시절에 탐관오리의 수탈과 학정(虐政)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은 스스로 노비가 되었다. 남의 집 종으로 사는 것이 배고픔으로부터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투탁노비’라 불렀다. 이 나라 백성의 절반이 노비나 천민이었다.
구한말 이 땅의 자유인들은 그런 이유로 자유를 버렸다. 아무도 그들을 꾸짖지 않았다. 가장 서러운 것이 배고픔이었음으로.
우리가 박정희 대통령을 5000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5000년을 짓눌러온 가난으로부터 우리 민족을 해방시킨 공적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1960년 그 분이 혁명을 일으키던 시절에도 우리 대한민국은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쓰디쓴 위액이 목구멍으로 올라오던 고통 속에서 사람들은 울부짖었고, 전쟁의 폐허 속에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가난은 배고픔이다. 부(富)하다는 것은 배고프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사흘을 굶으면 남의 집 담을 뛰어넘고, 나흘을 굶으면 남의 집 종이 되어 자유를 버린다고 하였다.
대선후보 시절 윤석열이 “가난한 자는 자유를 모른다”고 말했다가 설화(舌禍)를 겪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윤석열은 바른말을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시비를 거는 행위의 배경 속에 깃들어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저질 민주주의자들의 무지함과 악의적인 선동이 가소롭던 기억이 있다.
가난한 자는 자유(自由)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포기한다. 자유보다 더 귀한 것은 생존(生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유를 유보(留保)할 수밖에 없는 시절을 살아왔다. 그리고 돈 한 푼 벌어본 적이 없는 소위 운동권이라는 반역자들이 정권을 잡은 시대를 살고 있다. 그들이 외국유학을 보내며 호화롭게 자식을 키우는 장면도 목격하고 있다.
이재명과 그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자들은 모두 기업에 반감을 품고 있는 자들이다. 이제 대한민국 기업은 이재명 정권이라는 최대의 적을 맞이하고 있다. 기업은 해외 진출이 아니라 해외도피를 모색하고 있다.
배고픔을 해결한 자만이 자유를 누리는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우리 대한민국이 민주를 갈망할 때가 전두환 정권 이후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덕으로 배고픔이 해결된 이후, 민주화에 대한 열풍이 불었을 것이다. 그리고 경제를 완성한 전두환에 의해 대한민국은 민주시대를 활짝 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을 ‘5000년 역사의 영웅’이라고 부르고, 전두환을 ‘자유민주의 어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2025.7.3.)
ai 생성 이미지 이라크 민병대 참전설 확산… 이란 정권, 붕괴의 마지막 문턱에 서다자국 군은 방아쇠를 내리지 못했고, 정권은 국경 밖에서 총을 불러들였다 “자국 군은 방아쇠를 내리지 못했고, 정권은 국경 밖에서 총을 불러들였다.” 지금 이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단순한 시위 진압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 권력이 스스로의 한계를 고백하는 장면이다. 2026년 1월 16일, 국제 사회는 이란이 1979년 혁명 이후 가장 위험한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특히 최근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이라크 민병대 참전설’은 현 정권이 이미 붕괴의 마지막 문턱에 도달했음을 시사하는 결정적 신호로 해석된다. 1️⃣ “동포를 쏘지 못한 군대” — 왜 정권은 외국 용병을 불러들였는가복수의 해외 매체 보도에 따르면, 이라크 기반 시아파 민병대 수천 명이 ‘종교 순례자’ 신분으로 이란에 유입되고 있다는 정보가 확산되고 있다. 거론되는 규모는 약 5,000명 안팎이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의미는 명확하다. 이란 정권은 더 이상 자국 군과 치안 병력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부 보안군과 정규군 일부가 시위 진압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자, 정권은 언어·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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