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추석 연휴를 이용해 또 한 번 존재감을 과시했다. 노동당 창건 80주년을 맞아 심야에 치러진 열병식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20형’을 공개했고, 대한민국 대부분의 방송과 포털 헤드라인은 이를 ‘북한의 위협’이란 프레임으로 대서특필했다. 평소 같았으면 정치 이슈나 연예 스캔들이 지면을 채웠겠지만, 명절 기간의 뉴스 공백을 기가 막히게 꿰뚫은 북한은 단 한 발의 총성도 없이 한국 사회의 주목을 또 한 번 장악했다.
이쯤 되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왜 우리는 북한의 익숙한 레퍼토리에 매번 ‘놀라는 척’하는가? 신형 무기 공개, 미사일 시험발사, 핵실험 위협, 그리고 전술핵 언급까지. 북한의 이 같은 전략은 이미 수십 년 동안 반복된 레퍼토리이며, 그 실효성 또한 과거에 비해 크게 약화됐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언론은 북한의 자극에 매번 동일한 반응을 보이며, 위협을 과장하고 불안을 증폭시키는 보도를 반복하고 있다.
사실 북한의 열병식은 군사적 목적보다 정치적, 심리전적 목적이 더 크다. 내부적으로는 체제 결속과 충성심 강화를 위한 퍼포먼스이고, 외부적으로는 자신들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메시지를 심리적으로 주입하는 도구다. 조지프 나이(Joseph Nye)의 ‘소프트파워’ 개념은 이런 행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북한은 무력의 사용이 아닌 이미지와 메시지, 그리고 심리적 영향력을 통해 상대국의 행동을 제약하려 한다.
문제는 이런 전략에 우리가 매번 ‘적절히 반응’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언론은 북한의 도발을 예외 없이 톱뉴스로 다루고, 긴박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국민적 불안을 확산시킨다. 일부 북한 이탈 인사의 “북한은 남침 준비가 완료된 상태”라는 과장된 주장조차 검증 없이 받아쓰는 일도 잦다. 이는 실질적인 군사 능력과는 무관하게 북한을 ‘능력국가’로 착시하게 만드는 위험한 정보 왜곡이다.
정치적 심리전(Psychological Warfare)의 핵심은 ‘상대의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다. 북한은 자신들의 도발에 대해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철저히 관찰하고 학습해왔다. 그리고 매번 예상 가능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해왔다. 대한민국 언론은 이 흐름에서 사실상 북한의 전략적 파트너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보도 행태를 바꿔야 할 때다. ‘보도하지 않는 보도’ ‘의도적 침묵’ ‘전략적 무관심’은 결코 무책임한 회피가 아니다. 이는 심리전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 중 하나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언론이 무엇을 보도하지 않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행위 또한 사회 현실을 구성한다”고 했다. 다시 말해 침묵은 ‘무기력’이 아니라, 때로는 가장 강력한 권력 행위이자 메시지가 될 수 있다.
국제 정치의 패러다임도 ‘보도 전쟁’으로 이동하고 있다. 과거처럼 무력 충돌보다 정보 왜곡, 이미지 통제, 뉴스 선점이 전략의 핵심이 된 시대다. 북한은 하드파워가 아니라 소프트파워, 그것도 언론을 통한 대외 인식 조작 전략을 선택해왔다. 우리는 그 전장에서, 번번이 수세에 몰리고 있다.
물론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북한 관련 보도를 법적으로 금지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북한=1면 톱’이라는 자동 반사적 보도 관행을 재고하고, 뉴스 가치의 기준을 더 정교하고 성숙하게 판단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의 열병식은 군사력 과시보다 ‘보여주기용’ 연출이 대부분이며, 그 신무기의 실전 배치 가능성은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다. 그러한 불확실성을 분석 없이 단정적으로 받아쓰는 보도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조차 흔든다.
이제는 북한 보도에 있어 ‘속보 경쟁’보다 ‘절제된 분석’, ‘흥분’보다 ‘냉정한 거리두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의 도발에 보도하지 않는 전략은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과 과장된 위협을 분리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공포가 아닌 무관심이야말로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반응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대한민국 언론이 북한 뉴스에 반사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냉철한 거리두기와 분석을 병행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심리전의 프레임에서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북한의 전략이 아니라 우리의 전략으로 대응할 시점에 서 있다.

작가·언론인
세계일보 기자·문화부장·논설위원
한국통일신문·시사통일신문 편집국장·대표
스카이데일리 논설주간·발행인·편집인·대표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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